[숨]‘시혜’가 아닌 ‘지혜’가 필요한 때

[숨]‘시혜’가 아닌 ‘지혜’가 필요한 때

이진국 0 7 05.10 06:06
지난 4월 중순께 광주 광산구 가족센터에서 ‘장소와 환대의 인문학’이라는 주제 아래 마련된 8회 차 강좌 가운데 하나를 맡았다. 인스타 좋아요 구매 해보겠다고 나섰지만 어떻게 입을 뗄지 망설이는 시간이 길었다. 이주민 대상 인문 강좌인데 청강생의 국적, 연령대는 물론 생활환경도 제각각인 데다 한국어 습득 능력에도 차이가 있어 통역자가 함께 자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호남대학교가 2022년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인문도시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월곡동 고려인마을을 중심으로 다양한 일을 도모하고 있다. 사업단은 지역사회에서 이주민의 역할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동등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있지는 못한 실정에 주목했다. 강의를 요청한 관계자는 한국어 교육을 넘어 보다 삶의 차원에서 이주민의 사고를 확장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그 마중물 역할로 광주의 지역성에 기반한 인문 강좌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어떻게’가 관건이었다. ‘광주는 이런 곳이고, 광주 사람들은 이런 성향이니 이를 참고하십시오’ 하는 식으로는 따분하게 서로의 시간만 축낼 가능성이 크다. 광주와 이렇다 할 접점이 없는 내게 강의를 요청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매번 새로운 지역을 취재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을 하시잖아요. 어떻게 낯선 지역에 가서도 그 지역에서 좋은 것들을 발견하는지 말씀 나눠주시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라고 연유를 밝혔다.
청강생 대부분은 ‘F-6’으로 분류되는 결혼이민 비자를 취득해 입국한 이주여성들이라고 했다. 그들은 한국인 배우자의 아내 또는 아이들의 엄마로서 대한민국에 거주할 권리를 부여받는다. 이 때문에 자신이 ‘선의’로 결혼생활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일정 기간마다 국가로부터 ‘검증’받아야 한다. 이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자기 결정권을 갖지 못한 채 통제받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간 결혼이주여성들이 ‘다문화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만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광주에서 산 지 20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한국말이 서툴다는 한 청강생의 사정은 이주여성들이 생활상을 어렴풋이나마 그려보게 했다.
국립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김지혜 교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다문화주의는 각자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다. 특정 문화를 우위에 놓거나 일방적으로 선을 긋고 배척하는 행동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선 ‘다문화’가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진짜’ 한국인이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용어로 쓰이는 것이다라고 짚었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한국 사회가 다문화사회로 진입했다는 데 이견이 없지만 정작 내가 다문화사회 일원이라는 걸 체감하지는 못했다. 내게는 이웃으로서의 감각이, 이주민들에게는 새로운 삶의 근거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 선명해졌다.
고민 끝에 인스타 좋아요 구매 나는 질문하기 방식으로 강의를 꾸렸다. 여러분, 광주에 오기 전 광주가 어떤 곳인지 알았어요? 광주에 살아보니 어때요? 저는 서울에 살아요. 서울 알아요? 서울은 어떤 것 같아요? 광주와 뭐가 달라요? 되돌아오는 답을 통해 한국 사회, 그리고 광주라는 지역에 대한 청강생들의 이해 정도를 가늠할 수 있었고, 이는 이야기를 이어가는 근거가 됐다.
이 도시의 주인이 되는 방법
나를 놓치지 않기로
전통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덧붙여 나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내가 이주를 염두에 둔 지역과 내가 살고 싶은 도시의 기준에 대해 풀어놓았다. 그러고 강의 끄트머리에 한 가지 청을 건넸다.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여러분에게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광주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네 하는 돌아온 답에 묘한 기대감이 솟았다.
시혜적 태도와 시선에 가려 이주민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시간들이 못내 아깝다. 결혼이주여성을 포함하여 다양한 면면의 이주민들은 스스로 삶의 조건을 바꾸는 과감한 선택을 한 존재들이자,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새로운 시도를 한 용감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찾아온 용감한 이웃을 놓치지 않았으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혜가 아니라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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